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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지막 피부과 - 증상 너머 원인을 해독하는 두 의사의 치료 일지
- 박상영, 박의정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0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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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24401385 |
|---|---|
| 쪽수 | 27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의학 > 기타의학
AI추천 이유
피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피부과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화사한 조명, 번쩍이는 레이저, 주름과 잡티. 『당신의 마지막 피부과』는 그 익숙한 그림을 조용히 걷어내는 책이다. 20년 넘게 진료실을 지켜온 두 의사 부부가 함께 쓴 이 책의 첫 장면은, 산소호흡기를 단 채 대기실로 실려 들어온 한 어르신이다. 인근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그가 밭은 숨 사이로 온 힘을 다해 뱉은 한마디는 “가려워 죽겠어요”였다. 통증은 응급실로 달려갈 명분이 되지만 가려움은 유난스러움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저자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피부병은 그것을 겪는 당사자에게 명백한 재난이라고.
이 책의 미덕은 그 선언을 관념으로 남겨두지 않는 데 있다. 20년간 배꼽 속에 굳어 있던 각질 덩어리를 핀셋으로 꺼내 개복 수술을 막아낸 이야기, 몇 달째 낫지 않던 귀 습진의 진범이 이발할 때 들어간 머리카락 한 가닥이었던 이야기, 전신 습진으로 보이던 환자의 손가락 사이에서 끝내 옴벌레를 찾아낸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여기서 무기가 되는 것은 수억 원짜리 장비가 아니라 ‘보고, 듣고, 맡고, 만지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감각이다. 저자는 피부 질환을 산불에 비유한다. 약이라는 소화기로 당장의 불길은 잡을 수 있지만, 산이 바짝 말라 있는 한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난다고. 그래서 그는 집 청소는 누가 하는지, 샤워할 때 물 온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묻느라 30분을 쓰는 ‘비효율적인 의사’를 기꺼이 자처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진료실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천을 찾아 정사를 미루고 전국을 떠돌던 조선의 세조, 가려움을 달래려 하루의 대부분을 물속에서 보내다 욕조 안에서 생을 마감한 장 폴 마라, 초상화마다 조끼 안에 손을 넣고 있던 나폴레옹까지. 저자는 역사 속 인물들의 살갗을 빌려 가려움이 한 인간의 품위와 정신력을 어디까지 끌어내리는지 보여준다. 신경과 전문의로 출발한 박의정 원장이 오른쪽에 병변이 있어도 반드시 왼쪽을 함께 확인하는 신경학적 습관을 피부과 진료실로 그대로 옮겨온 대목 역시, 두 사람이 함께 썼기에 가능했던 이 책만의 결이다.
책은 소아기에서 사춘기, 성인기, 노년기로 이어지는 생애 주기를 성실하게 따라간다. 유전자를 물려준 죄인을 자처하는 부모,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청소년, 목덜미의 검은 띠가 위생이 아니라 대사 이상의 신호였던 중학생, 냄새라는 감옥에 갇혀 있던 아이가 차례로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책은 생과 사의 문턱까지 나아간다. 점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의사의 직업적 결벽, 발바닥의 검은 점 하나에 한 사람의 삶이 속절없이 잠식되던 흑색종 환자의 기억이 담담한 문장으로 놓인다. 자식들이 오래도록 볼 영정사진만은 고운 얼굴로 남기고 싶다며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병원을 찾던 여든다섯 할머니의 고백 앞에서, 저자는 미용 치료의 정의를 처음부터 다시 쓴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내놓는 가장 실용적인 제안은 ‘피부 건강검진’이다. 우리는 위와 대장을 위해 2년마다 내시경을 받으면서, 정작 몸에서 가장 넓은 장기인 피부는 병이 난 뒤에야 들여다본다. 저자들은 완치라는 환상 대신 관리라는 현실을, 사후 처방 대신 사전 점검을 권한다. 병이 내 삶을 통제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태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치유라는 문장은, 만성 질환과 오래 동행해야 하는 모든 이에게 깊이 남을 것이다.
읽고 나면 거울 앞에 서는 마음이 달라진다. 붉은 자국 하나, 검은 점 하나가 더 이상 무심한 얼룩으로 보이지 않는다. 피부는 우리의 일상이 고스란히 기록되는 일기장이라는 저자의 말은, 책장을 덮은 뒤에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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