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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38867177 |
|---|---|
| 쪽수 | 92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시
AI추천 이유
- 고단한 삶의 한가운데에도 꽃은 피고, 낭만은 남는다
-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순간, 슬픔마저 한 편의 시가 된다
엄기해 작가의 『슬픈 삶에도 낭만이 있다』는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 흐르는 기억의 시집이다. 시인은 특별한 삶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의 흰머리와 자식에게 챙겨 보내는 반찬, 장날의 풍경,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 남편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오가던 시간처럼 평범하고 구체적인 장면 속에서 삶의 진실을 길어 올린다. 그 장면들에는 가난과 이별, 기다림과 미안함이 있지만 동시에 사람을 향한 다정한 마음과 살아가는 힘도 함께 배어 있다.
특히 이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기억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다. 「유월의 일기」에는 산밭과 개망초, 아까시꽃, 장독대와 애호박이 등장하고, 「옥정호」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고단했던 가족의 삶이 한 화면처럼 겹쳐진다. 「보리밭」에서는 어린 시절의 노동과 학교 앞산 너머로 일하러 갔던 십 대 아이들, 대학 시절 만났던 스승의 기억, 그리고 현재의 자신까지 한 공간에 불러낸다.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감싸고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또 하나의 기억이 된다.
삶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솔직하다. 「자갈길」과 「동두천 버스터미널」에서는 군인 가족으로 살아가며 감당해야 했던 기다림과 이별의 고단함이 드러나고, 「서울역」과 「유체인간」에서는 낯선 곳에서 홀로 버텨야 했던 젊은 날의 두려움과 절망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시간을 단순히 불행했던 과거로 박제하지 않는다. 「환생」에서는 깊은 구덩이와 무덤 같은 삶을 지나 나비가 되는 이미지로 새로운 생을 그려내고, 「이팝나무」에서는 비바람을 견디며 다시 자라나는 생명의 힘을 바라본다. 슬픔은 끝이 아니라 다른 계절로 넘어가기 위한 힘이 된다.
시집의 후반부에 이르면 시인의 시선은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바라본다. 40년 교직생활을 돌아보는 정년퇴임사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 배우고 성장했던 시간에 대한 자부심과 고마움,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결국 『슬픈 삶에도 낭만이 있다』는 슬픔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책이 아니다. 슬픔을 슬픔 그대로 품은 채 그 곁에서 피어나는 꽃과 바람, 사람과 기억을 바라보는 책이다. 시와 그림이 함께 놓인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독자는 자신의 지나온 시간까지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아낸 슬픈 날들에도 분명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으며, 그 순간을 기억하는 마음 자체가 삶의 낭만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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