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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36431792 |
|---|---|
| 쪽수 | 32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양장 |
- 소설/에세이/시 > 국내소설
AI추천 이유

거센 물살이 나를 떠밀었다
레인 밖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물살을 이겨 내기 위해, 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온몸에 팽팽하게 힘을 주고 헤엄치는 ‘심해수영’ 선수 모파의 모습을 비추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생생하게 묘사되는 ‘심해수영’ 경기 장면은 독자를 수중의 관객석으로 데려다 놓으며, 가까이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작가가 상상력으로 빚어낸 ‘심해수영’은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원형의 레인을 한 바퀴 도는 종목이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역방향의 물살에 맞서며 원을 그려야 하는 이 종목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는 기이한 경쟁의 현실과도 닮았다. 가파른 기울기를 따라 맹목적으로 상승하고, 틈새를 비집고 나아가야만 하는 생존 게임.
열아홉 살 모파는 어른이 되어서도 ‘심해수영’ 선수를 할 거라고, 꿈이 있으니 남들처럼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고 굳게 믿어 왔지만 스무 살을 앞둔 지금, 현실은 그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간다.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급기야는 물살에 휩쓸려 레인에서 튕겨 나오는, 초보자에게나 일어날 법한 사고로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중요한 경기가 코앞인데, 이대로 영영 레인에서 쫓겨나면 어쩌지? 난데없이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된 모파는 반갑지 않은 상황에 괴로워한다.
이대로 가다가 알 수 없는 해류에 휩쓸려서 영영 사라져 버려도 괜찮지 않나. 나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눈을 감았다.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 어두운 눈꺼풀 안쪽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 건지 모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24면)
어디에든지 의존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버텨 낼 힘을 잃고 만다
벼랑 끝에서 혼돈과 싸우다 보면 자꾸만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진다. 약물이든, 조작이든, 혹은 그보다 더한 무엇이든. 이도 저도 못 한 채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던 모파의 손에 우연히도 ‘진화 촉진제’가 들어온다. 심해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수중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임신부들이 주로 복용하는 ‘진화 촉진제’는 원료가 귀하고 조제가 까다로워서 처방전 없이는 얻을 수 없는 약물이다. 직접 처방받지도 않은 약을 먹었다가 뭔가 잘못될 수도 있고, 도핑으로 적발되면 대회 출전조차 막히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박한 상황에 놓인 모파는 자꾸만 약봉지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파우치 안에 있는 약들은 어디 가서 구하려야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딱 하나만 먹어 볼까.
그런 생각을 하니 손끝이 절로 차가워졌다. (144-145면)
그런 와중에 SNS에서 누군가가 모파를 지속적으로 헐뜯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모파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괴롭힘의 수위를 높여 간다. 수상할 정도로 모파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아는 스토커의 모습에 가까운 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모파와 친구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스토커의 정체가 밝혀지게 되는 순간, 모파는 문득 깨닫는다. 정작 자신을 가장 괴롭게 만든 존재는 따로 있었다는 것을. “나의 무능을 쉽게 비난하고, 나의 크고 작은 수치를 낱낱이 파헤치고, 내가 뒤처질 때마다 끔찍한 말로 날 몰아붙이고 함부로 대하던”(188면) 모파 자신의 모습을.
나는 내가 점점 실력이 부족한 선수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겁을 먹었다. 과감하게 온몸을 앞으로 쏘아 보내지 못하고 그저 허덕이기 바빴다. 나를 돌아보는 게 아니라, 옆 레인에 있는 다른 사람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277면)
어디로 흘러가더라도 유연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지구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기면서 인류는 둘로 나뉘었다. 높은 산이었던 땅에 터를 잡은 고산종과 바닷속 생활에 적응해 나간 심해종. 폐 호흡보다 아가미 호흡이 자연스럽고, 지느러미와 비늘을 가진 아기들이 흔하게 태어나는 바닷속 세상은 거대한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이후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 유지현은 이 세계를 결코 비관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수백 수천만의 발광 플랑크톤이 모여 만들어 낸 바닷속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일상의 풍경을 선사한다.
『파란 파란』은 어떤 세계에 있든, 어떤 시대를 살든 우리들 각자 앞에 놓인 과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주목한다. 아주 낯선 무대로 독자들을 데려가지만, 사실은 깊은 바다를 거울삼아 독자들이 자기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권한다. “어딘가에 부딪혀 부서질 바위가 아닌 바다를 유영하는 해파리가”(294면) 되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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