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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24669105 |
|---|---|
| 쪽수 | 548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한국역사/지리
AI추천 이유
백범 탄생 150주년,
2026 유네스코 백범의 해 기념 전면 개정증보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싸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백범 선생은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3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1945년 해방하던 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도 20년의 긴 여정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갔건만, 백범 선생은 전 생애를 걸고 처절하게 싸웠음에도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삼팔선에 가로막혀 지척의 고향 땅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가 남긴 『백범일지』는 위인전기가 아니며, 일기도 아니다. 사선(死線)에 선 아비가 두 아들에게 남긴 절절한 유언이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운 50여 년 투쟁의 기록이다. 구한말부터 근현대까지 우리나라를 떠받친 이름 없는 범부(凡夫)들의 기록이다.
백범 선생을 위대한 사상가로, 독립운동가로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죽음을 앞두고 유서를 남긴 아버지의 심정을 떠올리면서, 백범이 기록하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범부들의 투쟁의 역사를 꼼꼼히 읽어 보자.
주해본에서 정본화 작업을 거쳐 전면 개정증보판으로,
철저한 고증과 깊어진 주석으로 만나는 가장 완벽한 『백범일지』
『백범일지』(1947, 국사원) 출간 50주년이 되던 해인 1997년에 돌베개출판사는 주해본 『백범일지』를 펴냈고, 2002년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서 주요 도서로 선정된 뒤 현재까지 100쇄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5년에는 모든 세대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주해본의 각주를 없애고 본문의 중복과 혼란을 간결하게 정리한 『쉽게 읽는 백범일지』를 펴냈으며, 이 책도 이미 50쇄를 넘어섰다. 그리고 2016년에는 백범 탄생 140주년을 맞아 백범 선생의 숨결까지 구현한다는 목표 아래 원본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탈초한 『정본定本 백범일지』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주해자인 도진순 교수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백범 연보』(근간) 작업에 매진하였고, 최근에 그 초고를 탈고하였다. 백범 선생의 연보를 쓴다는 건 백범 선생의 탄생 이전부터 죽음 이후까지 모든 생을 관통하는 역사를 쓴다는 것이며, 도 교수는 이 과정을 통해 백범 선생의 일생을 ‘그의 시대’ 속에서 재조명하고 『백범일지』 행간의 글을 볼 수 있었다.
개정증보판 『백범일지』는,
- 상권과 하권, 해방 이후의 일을 기록한 ‘계속분’과 「나의 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정본 백범일지』의 근대 국어 문장을 원전의 맛을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더 쉬운 현대문으로 바꾸고, 원문을 소개하는 주석을 줄였다.
- 현장감을 높이는 사진과 지도 80여 장을 엄선해서 요소마다 수록하였다.
- 장절 구분과 제목을 개편하여 『백범일지』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중국 현지음으로 바꿔주었다.
- 『백범일지』는 수십 년 이전을 회고한 내용이고, 선생조차 헷갈리는 부분은 모친인 곽낙원 여사에게 물어보고 보완했다고 하니 당연히 시기의 선후가 혼재되거나 전도된 경우가 많고, 고유명사의 오류 또한 상당히 많다. 이 책에서는 본문의 서술 순서를 준수하면서 연보 작업의 성과를 반영하여 연·월·일을 바로잡고 사건의 선후 관계를 바로잡으면서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인명 및 지명의 표기 오류 등도 모두 바로잡았다. 백범의 글이 아닌, 도 교수가 바로잡은 내용들은 〔 〕에 담아 원문 옆에 부기하였다.
1997년부터 30년에 걸친 꾸준한 출판 작업으로 인해, 돌베개출판사의 『백범일지』는 독자들에게 가장 모범적이고 표준이 되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번에 펴내는 개정증보판 『백범일지』는 독자들이 만나는 가장 완벽한 『백범일지』가 될 것이라 자부한다.
‘백범’白凡을 만든 뭉어리돌 정신,
가장 낮은 이들의 애국심이 완전한 독립을 이룬다
1911년, 백범 선생은 경성총감부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 “밤낮으로, 도살장에서 소와 돼지를 때려잡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들린다.”(『백범일지』) 여덟 번째 신문을 받던 날, 백범 선생을 고문한 일본인이 이렇게 말한다.
너의 동류가 대부분 자백하였거늘 너 한 놈이 자백을 않으니 심히 어리석고 완고하다. 토지를 사들인 지주가 논밭에서 〔쓸모없는〕 뭉어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 네가 아무리 입을 다물고 혀를 묶어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으려 하지만, 여러 놈의 입에서 네 죄가 발각되었으니,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때려죽이리라.
여기서 ‘뭉어리돌’은 못생기고 쓸모없는 돌로, 둥글둥글한 ‘몽우리돌’과는 다른 것이다. 일본인의 말에 백범 선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를 논밭의 자갈돌로 알고 파내려는 그대들의 노고보다, 파내어지는 나의 고통이 더욱 심하니 내가 자결하는 것을 보라.”
미친개 모양으로 분기탱천해서 죽도록 매질하는(『백범일지』의 표현 그대로다.) 왜놈이 백범 선생을 뭉어리돌이라 하는 것에 대해 선생은 오히려 기뻐하며 ‘오냐, 나는 죽어도 뭉어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어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는 생각을 깊이 새겼다.
백범 선생은 가장 천한 ‘백정’(白丁)의 ‘백’(白)과 평범한 ‘범부’(凡夫)의 ‘범’(凡)을 따서 자신의 호를 지었다. 백범 선생은 뭉어리돌처럼, 백정처럼, 범부처럼 가장 낮고 평범한 이들이 주체 의식을 가지고 애국심을 가질 때 비로소 완전한 독립국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범일지』는 백범 선생의 유서다.
애초에 이 글을 쓸 생각을 낸 것은 내가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국무령〕이 되어 내 몸에 죽음이 언제 닥칠는지 모르는 위험한 일을 시작할 때〔1928~1929년〕, 당시 본국에 들어와 있던 어린 두 아들에게 나의 지난 일을 알리고자 하는 동기에서였다. 이렇게 유서 대신으로 쓴 것이 이 책의 상권이다.
하권은 윤봉길 의사 사건 이후 중일전쟁의 결과로 우리 독립운동의 기지基地와 기회를 잃어, 이 목숨을 던질 곳이 없이 살아남아서 다시 오는 기회를 기다리게 되었으나, 그때〔1941~1942년〕 내 나이 벌써 칠십을 바라보아 앞날이 많지 않으므로 주로 미주美洲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를 염두에 두고,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나의 경륜과 소감을 알리려고 쓴 것이다. 이것 역시 유서라 할 것이었다.
_「출간사」 중에서
1929년에 탈고한 상권은 백범 선생이 일제의 침략이 극에 달하자, 고국에 있는 두 어린 아들(김인, 김신)에게 아비가 걸어온 길을 알리기 위해 유서 형식으로 집필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학 입문, 치하포 의거, 그리고 상하이임시정부 초기 활동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1943년에 탈고한 하권은 중일전쟁 발발 이후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집필되었다.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비롯해 한국광복군 조직 등 한인애국단과 임시정부의 본격적인 항일 무장 투쟁과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이다.
해방 이후 고국에 돌아온 백범의 활동을 기록한 것을 ‘계속분’에 담았고, 1947년 ‘국사원판’ 출간 당시 책의 말미에 부록 형태로 수록한 것이 「나의 소원」이다.
침략하지 않는 나라,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
해방 공간은 논쟁의 영역이다. 많은 인물이 재평가되고 있지만, 백범 선생의 위상은 다르다. 「나의 소원」을 쓴 해인 1947년은 해방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분단이 가시화되고, 국내적으로는 좌우익의 극심한 이념 대립과 파벌 싸움으로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백범 선생은 우리 동포가 중심을 잡고 통일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자주적 민족 철학을 제시하고자 이 글을 발표했다.
「나의 소원」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 부분(‘민족국가’, ‘정치 이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으로 나뉘며 두 가지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대답은 오직 하나, “대한 독립”이며, 그다음도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글은, 우리 주권으로 세운 당당한 독립국을 향한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또한 백범 선생은 우리나라가 군사 강국이나 경제 대국이 되기보다 오직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소망했다. 문화의 힘만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의 이 문장 속에 마치 지금을 예견한 듯한 두 가지 놀라운 지점이 있다. 대부분 한 가지는 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높은 문화의 힘”,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에 알려질 때 사람들은 백범 선생의 이 글을 떠올린다. 그룹 BTS(방탄소년단)가 앨범 ‘아리랑’(ARIRANG) 수록곡 <에일리언>Aliens에서 백범 선생에게 묻는다. “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
하지만, 문화의 힘보다 백범 선생이 먼저 강조한 것은 남을 침략하지 않는다, 즉 침략전쟁에 반대한다는 부분이다. 어디로 귀결될지 알 수 없는 21세기의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 세기 전 백범 선생의 이 말을 새겨듣고 확고한 원칙을 세운다면, 적어도 우리끼리의 분열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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