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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88713110 |
|---|---|
| 쪽수 | 137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수필
AI추천 이유

작가의 말
군위는 삼국유사의 고장이자 이윤기의 고향이다. 대한민국에서 ‘신화’ 하면 첫손에 꼽을 두 인물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야말로 ‘신화의 고장’이다.
신화는 신화의 시대에 끝이 난 ‘낡은 이야기’인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윤기 선생은 어린 시절 마을 청년들이 유리 태자의 이야기로 꾸민 연극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를 찾는 태자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나보낸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어린 이윤기가 그러했듯 신화는 우리 곁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재형의 이야기다. 오늘이 어제 같고, 흘린 땀이 성과 없이 휘발해버리기 일쑤인 일상에서 시시포스의 신화로 위로를 얻듯이.
신화의 고장에서 신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울고 웃고 투쟁하고 화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둑돌처럼 하나씩 들어 책 속에 옮겼다. 언젠가 이들의 이야기도 세월 저편으로 아득해지겠지만, 오늘보다 더 생생한 전설로 남을 것이다.
[인터뷰 한 편]
“백 년 세월 한결같이” 아버지의 ‘나침반 인생’
6·25전쟁 속 목숨을 구한 나침반
100세 삶을 지탱한 원칙과 인내
글 – 아들 김대봉
“이게 내 생명을 구했다.”
생명을 구했다는 그 ‘보물’은 군용 나침반이었다. 나는 그즈음 군대에서 막 제대했던 즈음이라 나침반이 군에서 쓰는 물건이란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나의 아버지 김동수(100) 선생은 “그 나침반 덕분에 6.25전쟁에서 인민군을 피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 아버지의 목숨을 구한 ‘원리’와 ‘원칙’
아버지는 1950년 10월 16일 입대해 한 달 동안 훈련을 받았다. 부대에 편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민군의 진격으로 부대가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경기도 가평에서 경북 예천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그때 아버지의 손에 나침반이 하나 들려 있었다. 두 명의 전우가 피난길을 함께했는데 그들은 나침반을 믿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남쪽을 향해 걸었고 그들은 ‘감’을 믿고 반대로 향했다.
당신은 “그 두 사람이 간 쪽에서 전투가 벌어졌는지 총성이 들렸다. 아마 전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천 용궁초등학교에서 드디어 한국군을 만나 다시 부대에 편성됐다.
아버지는 나침반을 따른 것처럼 기본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마인드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훈련소에서 배운 후퇴 요령을 마음에 새기며 나침반 바늘이 가리키는 대로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그때 아버지가 속으로 주문처럼 되뇌었던 후퇴 요령은 이것이었다.
첫째, 낮은 데로 가라.
둘째,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를 찾은 뒤 이동하라.
길에서 내려와 개울가를 걸었다. 늘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등 뒤에서 총알이 날아온 적도 있었으나 한 발도 몸을 관통하거나 스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키는 대로 하니까 정말 총알을 안 맞더라고. 너무 신기하더라고!”
# 꾸준함의 비결은 ‘인내’
이후의 삶에서도 아버지는 나침반과 조교들이 가르쳐준 규칙을 지켜 목숨을 구했던 그때처럼 늘 기본과 원칙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아버지는 중사로 제대한 이후 경찰 제복을 입고 국가에 봉사했다. 이 또한 공동체의 원칙과 규범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평생 늘 일정한 시간에 세 끼 식사를 했고, 하루에 2~3km씩 걷기 운동을 했다. ‘기본’과 ‘원칙’을 유지했다. 당신은 그 꾸준함의 비결로 ‘인내’를 꼽았다.
“매일 제시간에 식사하고 운동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프거나 피곤할 때는 건너뛰고 싶지. 그러나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지는 거야. 성공하는 인생을 못 사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에게도 늘 그런 말씀을 하셨다.
“피곤해서 직장을 하루 쉬어야지 생각하지만,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더 피곤해진다.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는데, 성공하는 사람들도 ‘참을 인’ 자 속에서 길을 찾은 이들이다.”
규칙적인 삶의 유익은 건강뿐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식사와 운동을 꾸준히 하시는 것처럼 성격도 ‘한결같다’”고 말한다. 유공자회 사무실 직원들은 “지회장님을 10년 20년 지켜본 직원들이 많은데, 한번도 화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일상처럼 생각과 감정도 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시는 분이다”라고 평가한다.
# 5형제 맏이로, 6남매의 아버지로
지역 사회에서는 늘 존경받는 리더셨지만 나에게 완벽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서먹서먹했다. 그도 그럴 것이 6.25에 참전해 중사로 제대하기까지 6년 넘게 집을 비웠다. 어린 시절 내내 ‘부재 중’이셨던 것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자녀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부자간의 은근한 정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마저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어린 시절에만 쌓을 수 있는 부자의 정을 모르고 성장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기어 다니는 모습만 보다가 갑자기 훌쩍 자라 뛰어다니는 자식이 얼마나 낯설게 다가왔을까. 전쟁이 남긴 폐해 중의 하나라도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아버지는 강직한 삶의 태도로 일관하신 분이었다. 남들에게는 심지가 굳고 성실한 분이었지만, 아들인 나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집안의 맏이였다. 밑으로 네 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우리네 전통적인 관념에서 큰형은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동생들에게 아버지 이상으로 집안의 기둥이 되어주어야 했다. 게다가 당신의 자녀도 6남매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네 명의 남동생에 4남매까지. 그야말로 당신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이 너무 컸다. 한 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었다. 사형제 맏이와 6남매의 아버지로 집안을 건사하기까지 ‘군인’ 이상의 강렬한 정신과 성실한 삶의 태도가 필요했을 것이었다.
# “충성!” 경례로 인사 나누는 90대 노병들
나는 아버지의 삶을 지탱한 마음가짐 중의 하나가 ‘군인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여름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옛 전우들이 병문안을 왔는데 여든을 넘어 아흔에 가까운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병상 앞에서 경례를 붙였다.
“충성!”
말로만 충성이 아니었다. 치료 및 간병 등과 관련해 지원을 받으려고 신청서를 쓰겠다고 했더니 극구 말렸다.
“하지 마라. 내가 나라의 덕을 이만큼 보고 있는데.”
100세 나이에도 혹시나 나라 곳간을 축낼까 봐 완강하게 혜택을 거부하신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식 된 도리로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등급을 받아 신청서를 넣었다. 지금은 읍내에 나가서 보훈처에서 파견한 도우미의 도움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계신다. 한동안 거실을 오가며 걷기 운동을 하시다가 지금은 읍내 나들이를 하실 수 있을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나침반을 떠올리게 된다.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당신도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 덕에 5형제 맏이로서, 6남매의 아버지로서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떤 어려운 일도 꾸준함과 이를 유지하는 인내만 있으면 다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신 그대로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아버지의 삶이 후손 대대로 큰 교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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