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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22125016 |
|---|---|
| 쪽수 | 208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시
AI추천 이유
은재인 줄 알았는데 은재가 아닌 존재
나인 줄 알았는데 낯선 몸짓,
잘못 알아본 채로도 끝내 놓지 못하는 이름들 사이
설현민의 첫 번째 시집 『있는 힘껏 비겁하기』를 펼치는 순간, 독자는 한 가지를 눈치채게 된다. 이 시집은 강해지라고도, 이겨 내라고도, 버티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속삭인다. 오늘 하루쯤은 있는 힘껏 도망쳐도 괜찮다고.
시집 속 인물들은 대단한 사건 없이도 하루하루를 통과해 낸다. 「사이×월드」의 화자는 〈홀에 들어서자마자 묻지도 않고〉 말을 쏟아내고, 「민희는 춤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한다」의 민희는 〈요즘 뭐해? 어디 살아?〉라는 사소한 물음 하나로 하루를 연다. 「인공의 섬」에서는 낯익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6시 내고향〉이 고랭지 쌈채소 농장 이야기와 함께 아무렇지 않게 시 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에덴수퍼마켙」은 낡고 오래된 동네 슈퍼의 간판 글씨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제목으로 시집 한 편에 자리를 잡는다. 이 시집의 화자들은 거창하게 선언하지 않는다. 그저 대화하고, 되묻고, 딴전을 피우는 것만으로 각자의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
그 대화들은 가볍게 시작하지만 가볍게 끝나지 않는다. 안도현 시인은 추천사에서 이 시집을 두고 〈대화와 진술이 교차하는 수많은 수다가 놀면서 때리고, 때리면서 웃고, 웃으면서 깡다구를 부린다〉고 썼다. 실제로 은희가 은희라고 불러 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에 이르면, 유쾌하던 수다는 어느새 이름을 지우고 살아온 이 땅의 수많은 이들을 마주 세운다. 웃음과 통증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이는 순간, 이것이 설현민의 시가 지닌 진짜 힘이다.
「테라리움」에서 화자는 화재경보기의 별스러움에도 소스라치지 않고, 구름 뒤에서 구름이 떼 지어 가는 것을 신기해하지 않는다. 대신 베란다에 차곡차곡 쌓아 둔 통조림, 색색깔 깡통에 담긴 미끄덩한 과일을 우물거리며, 끈적해진 국물이야말로 엑기스라고 되뇌며 들이켠다. 그러다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달콤한 것에 사로잡혀서 / 웃자 자지러지자 반복되자 지겹자.〉 신기해하지도, 놀라지도 않고 그저 달콤함에 사로잡혀 웃고 또 웃는 이 태도야말로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생존법에 가깝다.
버티는 대신 웃어넘기고, 강해지는 대신 능청스러워지는 것. 씩씩하게 맞서는 대신 슬쩍 곁눈질하고 딴청을 피우며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남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이 시집은 다그치지 않고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오래 눈이 머무는 문장 하나쯤은 이 안에서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시는 〈다음에 만나자〉는 인사로 문을 열어 둔 채 끝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조용히 〈끝.〉이라는 두 글자가 놓인다. 다음을 기약하면서도 한 번은 분명하게 끝맺는 이 마지막 페이지 앞에서, 독자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있는 힘껏 비겁하기로 한 것이, 사실은 이 시집이 세상과 마주하는 가장 다정하고 정직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에피케의 시인선 사이시옷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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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은 두 사물과 두 세계, 두 목소리를 이어 주는
작은 기호이다. 겉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 작은 소리가
앞과 뒤를 잇고, 멀어지려는 것들의 거리를 다시 좁힌다.
그 사이에서 생기는 숨, 긴장, 여운, 떨림을 우리는 〈사이〉라고 부른다.
이 시리즈는 바로 그 〈사이의 시(詩)〉에서 출발한다.
한 시인이 다음 시인을 부르고,
한 세계가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조금 기울며,
한 사람의 언어가 다른 사람의 언어 속으로 스며드는 릴레이 구조.
그 이어짐의 지점에 아주 작은 ㅅ이 놓인다. 흩어지지 않도록,
그러나 완전히 합쳐지지 않도록. 그저 조용히 사이를 열고, 울리고,
이어 주기 위해. 사이시옷 시리즈는 시인과 시인을 잇는 다리이며,
언어와 언어 사이에 생기는 투명한 떨림을 기록하는 연작이다.
그 사이에서 새로운 시가 태어나고, 또 다른 언어가 건너오며, 다음
목소리가 도착한다.
아주 작은 사이, 그러나 모든 시가 태어나는 자리.
우리는 그 틈을 사이시옷이라 부른다.
사이시옷 1. 『진심의 바깥』, 이제야, 12,000원
사이시옷 2. 『피냐타 깨뜨리기』, 이유운, 12,000원
사이시옷 3. 『사계절 시네마』, 정경훈, 12,000원
사이시옷 4. 『있는 힘껏 비겁하기』, 설현민,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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